한 사람이 하나의 상품이 되어야 하는 나이 서른.
나는 어떤 모습의 상품일까?
스물, 이십대의 시작
비로소 한 사람의 사회적 성인으로 인정받기 시작하는 나이.
아직은 부와 명예보다 당당함과 청바지가 어울리는 나이.
성공보다는 실패와 그로 인해 겪는 방황이 필요한 나이.
그 생채기로부터 생기는 친구, 경험, 지혜, 시야를 확보해야하는 나이.
그래서 정열적인 빨간색이 어울리는 나이..
실패한 고등학교 유학 때문에 이십대의 방황은 나에게 일찍부터 찾아왔었다.
공부에 집중 못하고 내내 답답해 하던 고3시절을 보내고 어찌저찌하여 대학교에는 들어갔지만
나의 관심사는 여전히 학교 정규수업 밖에 있었다.
사진기와 필름 2통 그리고 밤새 짐을 날러 벌은 돈을 쥐고 주말이면 세상을 누볐지만
렌즈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그저 수박겉핧기마냥 이미지에 불과했다.
그 이후 무엇이든 직접 해보자며 갖가지 아르바이트와 새로운 분야의 작업을 시작했다.
게임을 만들어보고, 영화를 찍고, 만화비평지를 제작하고, 인권행사를 진행하고, 취재를 다녀보고
그럼에도
TV에서 중학생 정도의 아이가 당차게 '나는 무엇이 좋아요', '커서 무엇이 될꺼에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참 부럽게도
나는 대학교 졸업반이 되어서도 진정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 누구보다도 미래에 대해 관심이 많고 노력해왔다고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사거리의 갈림길에 서서 갈팡질팡하는 내 모습을 보며 난 자괴감에 빠졌다.
좀 더 세상을 알고싶어 언론인이 되려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들어간 언론사와 3년간의 회사생활.
그러나 언론인은 전망대 그 자체였기에 전망대 속을 바라보려던 나는 계속 머무를 수 없었다.
나는 회사를 나와 다시 나를 보호해줄 학교로 돌아갔고
그 곳에서 스물아홉, 서른준비생을 맞이했다.
이제는 한 사람의 가장으로 인정받기 시작하는 나이고,
청바지가 당당할 때는 부와 명예가 있을 때 나이고,
실패란 있을 수 없으며 만에 하나 불상사에는 책임을 지어야할 나이고,
그래서 방황없이 승진이라는 사다리게임에서 이겨야할 나이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 모았던 친구, 경험, 지혜를 모두 써버려야하는 나이라
냉철한 파란색이 어울리는 나이다.
서른을 준비하며, 아니 서른을 두려워하며
나는 전문대학원을 다니고 시험을 준비하고 있지만
하루 24시간내내 가슴속 깊이 매여있는 답답함은 열아홉의 그것과 같았고,
나는 매일 '떠나줘', '떠나줘'라고 외치는 내 자신의 외침을 외면할 수 없었다.
때마침 지인의 도움으로 저렴하게 일본으로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되자
미련없이 지르게 된 일본 간사이 여행.
할줄아는 일본어라고는 아리가또와 스미마셍 등의 몇마디가 전부였지만
전달받은 가이드책은 스미마셍만 믿고 가면 만사OK라며 등을 떠밀었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잘 몰랐기에 나에게는 피상적으로
짙은 검정과 화려한 원색이 공존하는 나라로 다가왔다.
개인주의, 속마음, 히키코모리와 오타쿠, 장인같은 키워드는 짙은 검정으로,
다양한 스타일, 과감한 패션, 드러낸 성문화 키워드는 화려한 원색으로..
그래서 언젠가 일본에 가게될때는
CONTAX i4R 그 중에서도 꼭 빨간녀석과 함께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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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에 도착한 첫 날.
무계획으로 기타지역을 어슬렁 거렸다.
고층건물로 이루어진 도시의 숲.
회사일을 마친 직장인들로 골목마다 위치한 선술집은 붐볐고
무려 다섯개(?)의 백화점이 모여있는 중심가는 서울의 밤거리보다도 화려했다.
다시가라면 못갈 어느 거리 2층에 위치했던 라멘집의 음식맛도 훌륭했고,
대담한 개성에 오사카 특유의 건강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들도 멋져 보였다.
과연 화려한 원색들로 눈이 부실 정도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길거리 음식점임에도 불구하고 문밖에서 자판기에서 해당 식권을 뽑아서 전달하고,
엄청난 규모의 게임장들은 미어터질정도로 사람이 많았으며,
뭐 그리 다양한지 복잡하게 노선앞에 붙은 지하철노선들과
블럭마다 위치한 복제된 체인 음식점들과 편의점들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단절과 기계적 합리성 그러나 메마름을 느끼게 해주었다.
둘째날.
아침부터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간사이지방을 단기로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들리게 만드는 교토를 빼먹을 순 없었다.
먼저 도착한 후시미이나리타이샤역에 내려 거리를 보니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단정한 거리에 놀랐지만,
이내 댕댕댕~♪하는 귀여운 기차소리에 마음이 푸근해졌다.
<모든 사진은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음, 후시미이나리타이샤역의 옆 골목>
<댕댕댕~♪ 소리가 들려오는 교차로>
인생을 살다보면 신이라는 존재를 인정할때가 편할때가 있다.
너무나도 아쉽게 이루지 못한 일이 있을 때,
또는 반대로 너무나도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재물의 신답게 다양한 사업을 기원하는 기둥(?)들이 빼곡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이 기둥들이 누적해서 만들어진 길을 걸을 때는
이 기둥을 세우는 것 자체가 비즈니스모델이 아닌가 하며 비웃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기둥을 세우며 진정으로 갈구하는 일이 있다면
노력의 범위가 초과한 그 어떤 에너지가 쌓여 무슨 일이든지 성공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청수사 입장권 뒤에 적혀있는 대로
내가 신을 믿어 내 마음속에 신이 존재하면, 내 자신 자체가 신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 다음으로 가이드북이 가라고 가르킨 곳은 청수사, 기요미즈데라.
웅장했다. 절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라니.
그런데 언젠가 보았던 '세계를 간다'에서 보았던 풍경 그 이상의 것이 보이지 않아 그대로 내려왔다.
큰 절을 헤매며 살짝 지쳐갈 시점이었지만
비웃기라도 하듯 교토는 이제 시작이라며 나에게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확실히 한국의 한옥과는 달랐다.
고풍스러우면서도 화려한 거리와 가옥들은 마치 유럽거리를 거닐때의 느낌을 상기시켰다.
한옥의집이나 민속촌, 경주 등에서 느낄 수 없었던 모습들.
내가 파란눈의 이방인이라면 아시아의 어느 나라를 여행할까?
쇼핑을 위해서라면 홍콩, 신규사업이라면 중국, 문화라면.. 아쉽게도 일본인 이유가 여기에도 답이 하나 있었다.
출출해진 배를 보톤보리에서 해결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보톤보리 강(?)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풍경이
주인이었지만 쫓겨난 청계천 상인들과 오버랩되었다.
<모든 사진은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음, 보톤보리 강변>
셋째날.
주유패스를 끊은만큼 누구의 글 처럼 '본전을 뽑을까'하는 생각에
피로가 덜 풀린몸을 이끌고 오사카성을 향해 출발했다.
오사카성에 도착하기전에 보인 역사박물관에는
층층마다 도장을 찍으며 답을 적는 초등학생들로 붐비었다.
아마도 현장학습의 일환일텐데 진지하게 전시물을 보는 학생도 있고,
대충대충 답을 컨닝하려는 아이도 있고..
어찌됐건 국사과목이 수능에서 필수가 아니게 된 우리나라 현실이 또 한번 오버랩되었다.
그런데 이 곳에서 오사카성을 바라보자니
저 곳에 간다한듯 대충대충 도장만 찍어대는 것과 다를 것이 없어보였다.
마치 스무살쯔음의 카메라로 바라본 겉모습의 세상알기처럼.
<역사박물관 10층에서 바라본 오사카성>
그래서 주유패스 도장찍기는 패스하고
조금이나마 오사카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다시 남바 시내로 들어섰다.
과연 오사카는 활기의 에너지가 가득찬 도시 답게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정신없이 사람들의 물결에 이끌려 이리저리 신시바이시 거리를 한참동안 헤매였다.
<난바인지 난징인지, 중국인지 일본인지 모를듯한 스케일의 시내>
그러다 도착한 곳은 난바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요츠바시 거리.
이 곳은 마치 홍대입구역의 번잡한 술집거리를 지나면 딴 세상같이보이는 상수역의 조용한 와인골목처럼
거리는 조용했지만 아기자기한 까페와 트렌드 샵이 가득해 보였다.
그리고 나를 반겨준 곳은 책 까페 오사카에 나왔던 로카리테였다.
2층 계단을 올라서 까페에 들어서자 조용함을 넘어 고요.. 혹은 시간의 정지가 느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시계는 보이지 않았다.
인테리어도 거의 없는 갈색 이글루같은 곳.
하지만 로카리테는 나에게
떠밀려서 오게된 여행에 무엇이 그리 급한지 열심히 도장을 찍던 나에게
처음으로 나만의 시간을 주었다.
'핫또 코히'를 한잔 주문하고선 멍하니 앉아있다가
불현듯 '내 인생의 키워드'가 생각났다.
더보기
오래전 잡지 페이퍼에서 방법은 배웠지만
한번도 해보지 않은 게임.
서른을 준비하면서
시간이 정지한 로카리테에서 할만한 것이라고 생각이 들자
이내 노트와 펜을 꺼내들었다.
나를 표현했던 단어 추억, 성공, 친구, 사랑, 홍대, 여행 그 외...
각 단어들은 하나씩 줄어들다가 결국 두개의 단어로 줄어들었다.
하나는 미래, 다른 하나는 도전.
단어를 줄일때는 무심코 했었는데
마지막 키워드라고 하니 멋진 말이 없을까 고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인생의 키워드로 생각된 단어는 열정.
< 다락방같은 느낌의 로카리테에서..>
서른준비생으로서
빨강을 나타내는 열정은 이제 버리고 파랑의 지향해야하것만
내 인생의 키워드는 서른은 무자르듯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 했다.
지금까지 스스로 가졌던 열정을 가지고 서른이라는 미래에도 도전하라는 것이겠지?
사실 단어를 줄이는 것 자체가 꿈보다 해몽일 순 있지만
우연이 아니라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그 만큼 나를 표현할 단어,
내가 진정으로 갈구하고 희망하는 지향점이 선택되는 것이니
이 내 인생의 키워드가 여우신사와 청수사에서 느꼈던 신과 마음의 관계처럼
나를 표현해주기도 하지만 나를 이끌어줄 키워드일 것 같기도 했다.
누군가 시간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누적되는 것이라고 했다.
또 노력하는한 방황한다고도 했다.
나의 서른준비는
힘들었지만 뜨겁게 보냈던 이십대의 빨강을 버리고 변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묵묵히 계속 걸어가는 것이었다.
마지막 밤저녁에 WTC의 타워에 올랐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참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게 해준 오사카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답을 찾아 더 이상 답답해하지 않은 마음은 후련했다.
<WTC 59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오사카>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는 간사이 공항을 뒤로했다.
<바다위에 떠 있는 간사이 공항>
도심 지하철에 AV인기순위 TOP15잡지가 버젓이 광고되는 곳. (에로를 좋아한다기보다 문화의 다양성과 관용;)
남녀노소 구분없이 자전거 타기가 일상이라 건강한 에너지를 유지하는 곳.
12월 시험이 끝나면,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는 서른을 기념하기 위해
다시 한번 간사이로 달려가고 싶다.
2007_uccmarketing.pdf